무엇인가 비참한 일이 일어날 때면 우리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벌을 받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일상적 인과론적 설명을 넘어서는 설명을 찾게된다. 참담한 사건일수록 객관적으로 보면 가당치도 않은 의미를 갖다붙이게 되고, 심리적 운명론으로 빠져드는 경향도 강해진다. 비통함 때문에 당황하고 진이 빠진 상태에서 의문의 부호들, 혼돈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의 상징들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우리는 혼돈에 둘려싸여 있기 때문에, 어떤 일들은 필연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우연이라는 공포를 완화하고, 그럼으로써 삶이라는 혼란에 일관된 목적성과 방향을 부여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주사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향으로 구르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필연성의 패턴을 그려보려고 한다. 하물며 우리가 어느 날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필연성의 패턴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사건을 운명에서 정해진 일로 읽으려는 이런 경향 배후에는 우연에 대한 불안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삶의 얼마 안 되는 의미라는 것도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두려움, 두루말이 같은 것은 없다는 두려움,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는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두려움.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의 사랑을 보장해줄 신은 없다는 불안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 우리는 시간표가 꽉 짜인 현재의 무자비한 역학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노스탤지어에 젖어 느릿느릿 뒤따라온다. 만일 모든 연애가 낙타에게 짐을 더 얹는 것이라면, 사람의 짐의 의미에 따라서 영혼의 속도는 더 느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의 낙타가 마침에 그 엄청난 무게를 떨쳐버렸을 때, 낙타는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모든 욕망도 사라졌다.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살았다. 눈을 감고 살았다. 내 눈은 뒤로, 안으로 기억을 향해 있었다. 여생을 그 낙타를 따라 기억의 모래언덕들 사이를 구불구불 나아가며, 가끔 매혹적인 오아이스에 들려 행복했던 시절의 이미지들을 들추며 살아가고 싶었다. 현재는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제가 되었다. 현재라는 것은 과거 옆에 갖다놓으면 지금은 없는 사람의 기억을 되살려내며 나를 조롱할 뿐이었다. 미래라는 것은 더욱더 비참한 부재 상태를 의미할 뿐이었다.
물리적 세계는 내가 잊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가 창문을 때려대는 동안에도 어떤 사람은 사랑과 진실, 아름다움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름날에도 구불구불한 길에서 자동차가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잃어서 나무를 들이박고 승객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외적 세계는 나의 내적 기분을 따라와주지 않았다. 세상이 내 기분에 따라 표정을 바꾸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
기억은 중립화되면서 역사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망각에는 죄책감이 뒤따른다. 부재에 무관심해진다는 것.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상실과 배신에 대해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정체성이 점점 재형성되고 시간은 결국 자신을 생략한다. 그것은 마치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대의 사건, 역사가 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심적 세목으로 축소되어버린 사건과 같다. 대부분의 기억들은 축소되고 몇 개의 아이콘적 요소들로 정제된다.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가벼워진다. 계속 등에 실린 기억과 사진들을 흔들어 사막에 떨어뜨렸고, 바람이 그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낙타는 점점 더 가벼워져 나중에는 그 독특한 모습으로 뛰어가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내 현재라고 부르는 조그만 오아시스에서 이 지친 짐승은 나의 나머지를 따라 잡게 된다.
- 알랭 드 보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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